지영희 연혁 1 페이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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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영희 선생 연표

○ 1909년 : 음력 8월 14일 경기도 진위군 포승면 내기리 543번지 출생(현. 포승읍 내기리) ○ 1915년~1921년 : 서당에서 공부(7~13세) ○ 1918년 : 이석은에게 승무, 검무, 굿거리 등 고전무용 사사 ○ 1923년~1926년 : 경기도당굿 피리잡이 생활 ○ 1926년 : 정경순과 결혼 ○ 1927년 : 최응래에게 무악을 사사 ○ 1928년 : 내기공립보통학교 졸업 ○ 1929년 : 조항련에게 호적을 사사 ○ 1930년 : 정태신에게 양금을 사사 ○ 1931년 : 지용구 문하에서 해금, 양경원에게 피리 삼현육각과 시나위 사사 ○ 1932년 : 김계선에게 풍류 대금 및 방용현(方龍鉉)에게 민속 대금과 풍류 대금을 사사 ○ 1933년 : 최군선에게 농악 12채, 지용주에게 무속장단 12채를 사사 ○ 1934년 : 박춘재에게 경서도민요를 사사 ○ 1935년 : 오덕환에게 무속장단 12채 사사 ○ 1936년 : 박춘재에게 경서도민요를 사사 ○ 1937년 :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해 양금·피리·해금·단소를 지도하며 민족음악 육성에 진력, 고전무용과 정악, 민속장단, 남도민요 판소리보급 등을 연구 ○ 1937년 : 경성방송국 관악담당 악사로 선임, 시나위 방송 시작, ○ 1937년 : 빅타레코드사에서 민요와 대풍류곡을 취입 ○ 1938년 : 조선음악무용연구소의 한성준음악무용단원으로 일본 순회공연, 빅타레코드사 취입과 국악방송 ○ 1938년 : 만주 일대 함경남북도, 평양, 황해도 등지 순회 음악무용 공연 ○ 1939년 : 선방삼화무용연구소에서 무용반주곡 ‘갈까보다’를 편곡하고 ‘만춘곡’을 작곡, 삼화무용 지도 ○ 1939년 : 부민관에서 발표공연을 지도하고 부산, 마산, 평양 등지를 순회 발표공연 ○ 1941년 : 최수성에게 단소를 사사 ○ 1941년 : 조선음악협회를 창설하고 100여명의 악사를 동원해 부민관에서 음악 발표공연 ○ 1943년 : 최승희무용단에서 관악무용곡을 편곡, 전국 각지 순회 발표공연 ○ 1943년 : 아쟁을 스스로 연구 ○ 1944년 : 최승희무용단원으로 북경, 몽고, 남경, 상해 등지를 순회 발표공연 중 중국음악 ‘한궁추월’과 수 곡을 연구하여 귀국발표회 진행 ○ 1940년~1941년 피리·해금으로 경기가요를 경성방송국에 출연 ○ 1945년 : 국악건설본부를 발기 창립 ○ 1945년 : 국악원을 발기 창립 ○ 1946년 : 가야금을 연구 습득 ○ 1946년 : 취타변주곡을 편곡 ○ 1946년 : 고려레코드사에서 민요 60여 곡을 취입 ○ 1946년 : 서울방송국 전속국악사를 역임 ○ 1947년 : 전속조선음악회로 방송활동을 전개 ○ 1947년 : 대한국악원 주최 ‘선화공주’ 공연 때 악사 12인조를 조직해 최초로 무대 전면에서 반주하도록 음악을 편곡지도하여 지휘, 이때부터 과거에 없던 아쟁으로 판소리와 창극반주을 시도해 성공리에 공연 ○ 1948년 : 가야금 명인 성금연과 결혼 ○ 1948년 : 음악연구소를 설립해 후진 육성에 진력 ○ 1949년 : 여성국극동지사에서 음악을 편곡해 반주 지휘 ○ 1953년 : 서울중앙방송국 국악전속민요연구회 입회 ○ 1953년 : 김상기로부터 거문고 사사 ○ 1953년 : 대한국악원 이사 취임 ○ 1953년 : 대한국악원 산하 관인 지영희고전음악연구소를 창립, 기악과 고전무용을 지도 육성 ○ 1956년 :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국악민요와 최초로 조양 합주를 시도, 80여곡 취입 ○ 1956년 : 유니버샬, 신세계, 미도파레코드, 대도, 킹스타레코드사에서 고전음악 100여곡을 취입해 해외 각지에 판매 ○ 1957년 : 사단법인 대한민속예술원 이사 취임 ○ 1960년 :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해 12년간 재직, 해금·피리·장단·양금을 지도 ○ 1962년 : 국악예술학교 주최 악성추모제에서 50여명의 기악합주단을 조직해 ‘청하지곡’을 작곡하여 발표 연주 ○ 1962년 : 정부 공보부 추천으로 프랑스에서 세계민속예술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국위 선양과 국악발전에 기여 ○ 1962년 : 정부 공보부 추천으로 일본을 방문해 국제친선예술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국위선양과 국악 발전에 기여 ○ 1963년 :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 중수공사 낙성의식에 국악관현악을 지휘 연주 ○ 1963년 : 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을 조직해 지도 지휘 ○ 1964년 : 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로 ‘시나위’를 작편곡하여 제1회 발표공연 진행 ○ 1964년 : 동경올림픽 선수와 재일교포를 위해 일비곡공회당과 구단가이강 일경홀에서 위안공연 ○ 1964년 : 서라벌예술대학 강사 활동 ○ 1965년 :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1악장 역임 ○ 1965년 : 휘모리곡을 작편곡하여 국립극장에서 발표공연 ○ 1966년 :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초대 상임지휘자 역임 ○ 1967년 : 서울특별시문화상 수상 ○ 1970년 : 일본 대판만국박람회에 한국대표로 국악공연과 한일친선공연으로 각지방 순회 ○ 1972년 : 미국 뉴욕 아세아학회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19주 중고등대학에 국악강연과 감상 진행 ○ 1972년 : 한국민속예술연구원 부이사장 취임 ○ 1973년 :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 지정 ○ 1973년 : 신세계레코드사 ‘한국민요특선집’에 해금 반주 ○ 1974년 : 미국 하와이 이민 ○ 1974년 : 하와이대학에서 수차례 연주회 ○ 1975년 : 장기 외유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 해제 ○ 1975년 : 쿠히오파크 테라스에서 민속예술제 참가 ○ 1976년 : 하와이대학 오비스홀에서 지영희·성금연 가족발표회 ○ 1977년 : 민속학회 시나위 주최 지영희·성금연 초청연주회 참가 ○ 1980년 : 숙환으로 하와이에서 별세